※ ※ ※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고 드디어 일상으로 해방된 예니치카는 친척들의 도움 아래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친척이 여럿 몰려와 집안이 북적이게 되었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다는 구멍이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말을 걸어 주고 신경 써 주는 그들에게는 고마움을 느껴서 그녀는 최대한 빠르게 기운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 촥- 상쾌한 물소리와 함께 그레이스 화이트가 끼얹은 찻물이 그녀 옆에 피어 있던 화단 위로 쏟아져 내렸다. 차를 권했던 클로드는 그 장면을 지켜보다 웃음기 있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이래?” “무슨 상관이야. 꽃에 물 준 것 좀 가지고 나한테 성질부리는 거야?” 지난날 클로드가 내렸던 명령대로 그레이스는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작은 방...
※ ※ ※ 왕비 교체가 백지화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프란시스의 이름으로 된 귀가 명령 서신이 플로라 군의 앞으로 도착한 것은 프란시스가 체스를 그만둔 날로부터 하루가 지난 뒤였다. 한참이나 기대를 부풀리던 자들은 왕자님 본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지만 일단은 승리한 것이니 축하하기로 하며 소년을 던졌다 내렸다 하다가 마지막 샴페인을 그의 품에 안겨 주...
※ ※ ※ 회의가 막을 내린 날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회의실 안에 병풍처럼 서 있던 고용인들에 의해 회의의 내용이 남김없이 까발려진 그 날부터, 그들의 승리를 자축한 사랑의 모임 회원들은 며칠째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하지만 귀족들이 돌아섰을 뿐이었지 아직 모든 게 결정 난 것은 아니어서 그들은 가장 아끼는 샴페인은 터뜨리지 않고 아껴 두었다. 가능만...
※ ※ ※ 2주 만에 왕성의 회의실에 다시 집결한 귀족들은 눈이 시뻘게지도록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바빴다. 지난날 점잔을 빼며 에드워드 발렌타인과 카민스키 허빈 사이의 논쟁을 지켜보던 기품 있는 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푼이라도 덜 손해 보려는 자들의 몸부림은 상상을 초월했다. “카민스키 허빈 백작, 당신이 책임지시오!! 도대체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한편, 이 사태에 웃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왕자가 연인을 챙기러 몰래 바깥 외출까지 감행한다는 것이 밝혀진 날로부터 하루가 더 지나고, 새로운 해가 떴지만 모두가 즐거운 수도에서 혼자 즐겁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무도대회에 거액을 투자했던 어떤 귀족 사내가 악을 쓰며 팔을 휘두르자 그의 팔에 밀쳐...
※ ※ ※ 한편, 바깥의 난리와는 멀리 떨어진 깊은 궁 안에 선 프란시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왕자인 척을 하며 오늘 일어났던 사태의 보고를 받았다. 이렇게 선제공격은 시작되었고, 아마 지금쯤 이 소식을 클로드나 다른 귀족들도 듣고 있을 것이니 이제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어휴, 말도 안 되는 모임이군요.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만 최고의 무대에 선 전사...
※ ※ ※ 다음 날, 왕궁에는 늘어난 물량의 생산비를 대겠다는 투자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소식에 늦고 인맥이 짧아서 이렇게까지 돈을 대놓고 벌어주는 잔치에 끼지 못했던 자들은 갑자기 내려온 한 줄기 동아줄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이러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돈을 모으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것을 버느라 보내는 시간 역시 아까운...
※ ※ ※ 한편, 수도 곳곳에 설치된 무도대회 기념품점에는 오후가 되더니 갑자기 커다란 손수레를 하나씩 끄는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쓸어 담았다. 물건의 종류가 무엇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보지도 않고 일단 전부 주워 담는 모습을 본 가게의 점원들은 깜짝 놀랐지만, 그 점원 중에도 절반가량이 이미 예니치카 님 사랑의 모임 회원이었기에...
※ ※ ※ 바깥일을 아브라함 발렌타인 측에 맡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계획했던 것대로 시종과 시녀들이 부지런하게 밖을 돌며 왕자님의 소문을 전했고, 밤마다 수도의 나쁜 녀석들을 소탕하려는 움직임도 계속되었다. 예니치카를 위한 그림자 군대가 그 실체를 갖추고 이후에도 사람이 점점 모여들자 이제 수도 곳곳에서는 모임을 상징하는 붉은 천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
※ ※ ※ 프란시스가 본궁 복도에 나타나자 금 삼백에 넘어간 시종들이 평소보다 몇 배는 깍듯한 자세로 그를 맞았다. 그들을 뒤에 주렁주렁 달고 위풍당당하게 방에 입장한 프란시스는 자기 앞에 놀라며 고개 숙이는 행정관료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은 뒤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관료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았다. “왕자님, 아직 이러시면 안 됩니...
※ ※ ※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의 다음 날 아침, 발렌타인 공작가의 저택에는 아침 일찍 일어난 리오가 먼저 식사를 끝낸 접시를 치우고 있었다. “형은 아직도 자요?” “그런 것 같아요. 학교 가서 생활습관이라도 발전해 올 줄 알았더니…. 문까지 걸어 잠그신 걸 보니 늦잠 주무실 모양인데 도련님이 가서 깨워 오실래요? 식사 치우고 다시 차리려면 노동력이 ...
왕국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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